![]() |
| 인생의 공허감 |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얼굴이 낯설어서 시선을 피한 적이 있을 것이다. 어제까지 서른 언저리였던 것 같은데, 거울 속 사람은 어느새 부모의 얼굴을 닮아 가고 있다. "언제 이렇게 나이가 먹었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이 한 줄은 놀람과 허탈, 이름 붙이기 어려운 쓸쓸함을 한꺼번에 데려온다.
이상한 것은 이 감정이 불행해서 찾아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은 그럭저럭 안정되어 있고, 큰 문제도 없고, 하루하루는 별 탈 없이 굴러간다. 그런데 바로 그 '그럭저럭'이 어느 날 공허로 바뀐다. 슬프지는 않은데 채워지지도 않는 상태. 불평할 근거가 마땅치 않아서 누구에게 털어놓기도 애매하다.
그래서 이 감정은 대개 혼자 삼켜진다. 하지만 당신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이름이 붙어 있다는 것은, 많은 사람이 같은 길을 지났다는 뜻이다.
먼저 시간이다. 어릴 적의 한 해는 아득히 길었는데 지금의 한 해는 눈을 깜빡이면 지나간다. 달력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시간이 빠르게 느껴지는 이유를 설명하는 유력한 가설 하나는 기억의 밀도에서 답을 찾는다.
처음 가 본 도시, 첫 출근, 첫 이별처럼 새로운 경험은 기억에 또렷한 칸을 만든다. 반복되는 날들은 한 덩어리로 압축되어 저장된다. 같은 길을 같은 시간에 오가는 일 년은, 돌이켜 볼 때 몇 장면으로 줄어 있다.
시간이 빨리 간 것이 아니라, 기억할 칸이 적었던 것이다.
그 압축된 시간 위에 또 하나의 힘이 얹힌다. 처음에는 설레던 것도 익숙해지면 같은 크기로 느껴지지 않는다. 심리학은 이를 쾌락 적응이라 부른다. 새 직장의 활기도, 새집의 기쁨도, 새 관계의 두근거림도 시간이 지나면 기준선으로 가라앉는다.
삶이 나빠진 것이 아니다. 기준선이 올라간 것이다. 좋은 것에도 똑같이 작동하는 이 적응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는데도 아무 감흥이 없는 날이 생긴다.
공허의 일부는 결핍이 아니라 익숙함에서 온다. 그렇다면 해법도 무언가를 더 채우는 쪽이 아니라, 익숙함을 흔드는 쪽에 있을지 모른다.
여기서 칙센트미하이의 몰입 연구가 쓸모를 보인다. 그는 사람이 가장 충만함을 느끼는 상태를 몰입이라 부르고, 그 조건을 도전과 실력의 균형으로 설명했다. 도전이 실력보다 지나치게 높으면 불안이, 반대로 실력이 도전을 앞지르면 권태가 찾아온다.
오래 같은 일을 해 온 사람이 지루해지는 것은 게을러서가 아니라, 실력이 과제를 한참 앞질렀기 때문일 수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은 더 긴 휴식이 아니라 한 칸 위의 과제다. 해 본 적 없는 기술, 맡아 본 적 없는 역할, 낯선 분야의 작은 도전 같은 것들.
그런데 어떤 공허는 새로운 자극으로도 채워지지 않는다. 휴가를 다녀와도, 새 취미를 시작해도 밑바닥의 허전함이 그대로인 경우다. 발달심리학자 에릭슨은 성인기 중반의 과제를 생성감과 침체감의 갈림길로 설명했다.
내가 쌓은 것을 다른 사람과 다음 세대에게 흘려보내려는 마음이 생성감이고, 같은 자리에서 맴도는 느낌이 침체감이다. 이 틀에서 보면 중년의 공허는 고장의 증거가 아니라 질문이 도착했다는 신호일 수 있다. 내가 지금까지 쌓은 것은 누구에게 쓸모가 되는가.
나이 듦은 흔히 잃어 가는 목록으로만 읽힌다. 체력, 속도, 가능성. 하지만 같은 시간 동안 늘어난 목록도 있다. 사람을 보는 눈, 감당해 본 일의 수, 쓸데없는 곳에 쓰던 힘을 거두는 능력. 얻은 것의 목록은 적어 두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공허를 서둘러 메우려 하지 않는 편이 좋다. 쇼핑이나 빽빽한 일정으로 덮으면 잠깐은 조용해지지만 신호는 그대로 남는다. 공허감은 해치워야 할 오류가 아니라 읽어야 할 메시지다. 읽는 방법은 의외로 작고 구체적이다.
첫째, 이번 달 안에 '처음'을 하나 만든다. 가 본 적 없는 길로 퇴근하기, 배워 본 적 없는 것의 첫 수업 듣기 같은 작은 일이면 충분하다. 처음은 기억에 칸을 만들고, 익숙함의 기준선을 흔들고, 도전의 눈금을 한 칸 올린다. 하나의 행동이 세 가지 힘을 동시에 건드린다.
둘째, 하루 끝에 한 장면만 적는다. 오늘 가장 선명했던 순간 하나, 한 줄이면 된다. 반복되는 날들에 표식을 꽂는 일이다. 몇 달 뒤 펼쳐 보면, 압축되어 사라질 뻔했던 시간이 다시 칸을 얻는다.
셋째, 쌓아 온 것을 한 사람에게 건넨다. 후배에게 요령 하나를 가르치거나, 오래 쌓은 경험을 글로 남기거나, 누군가의 질문에 시간을 내어 답하는 일이다. 생성감은 거창한 사명에서 오지 않는다. 쓸모가 되었다는 감각은 작은 전달에서 생긴다.
다만 몇 주 넘게 아무것도 즐겁지 않고, 잠이나 식욕이 흔들리고, 모든 것이 의미 없게 느껴진다면 권태와는 다른 문제일 수 있다. 이럴 때는 혼자 견디기보다 상담 전문가나 의료기관과 이야기해 보는 편이 안전하다.
다음에 엘리베이터 거울 앞에 서면 시선을 피하지 않아도 좋다. 문이 열리고 거울 속 얼굴이 시야 밖으로 사라지는 그 짧은 순간, 그 얼굴이 알려 주는 것은 시간이 흘렀다는 사실 하나만이 아니다. 아직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것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기도 하다.
#인생공허감 #권태기 #중년심리 #나이듦 #무기력극복 #자기이해 #심리학 #마음챙김 #인생조언 #일상의변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