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서툴까?

서른이 넘고 마흔이 가까워도 은행 창구 앞에서 괜히 목소리가 작아지는 사람이 있다. 계약서의 낯선 조항 앞에서는 아는 척 고개를 끄덕이고, 집에 돌아와서야 검색창에 그 단어를 쳐 본다. 어른이 되면 다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어른은 '완성된 사람'이라는 오래된 믿음

어릴 때 그려 본 어른은 완성품에 가까웠다. 월세 날짜가 되면 알아서 이체하고, 불편한 말도 표정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꺼내고, 일이 터져도 "일단 침착하자"고 말하는 사람. 나이가 차면 서툰 것들이 하나씩 졸업되어 간다고 믿었다. 감정을 다루는 일도, 관계에서 선을 긋는 일도, 돈과 서류를 다루는 일도 때가 되면 저절로 능숙해진다고.

그 믿음은 꽤 오래 힘을 쓴다. 그래서 서툰 순간이 올 때마다 해석이 한쪽으로만 기운다. 아직 덜 자랐구나. 나만 뒤처졌구나.

한 사람을 가정해 보자. 회사에서는 후배에게 업무를 가르치는 위치가 되었다. 후배 앞에서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설명하지만, 연말정산 서류 앞에서는 여전히 인터넷 카페 글을 뒤지며 불안해한다. 

퇴근 후 현관에 들어서면 오늘 한 말이 맞았는지 머릿속으로 되짚는다. 그는 자신이 어른 흉내를 내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흉내라는 단어를 고른 순간 결론은 이미 나 있다. 진짜 어른은 따로 있고 나는 거기에 못 미친다는 결론. 그런데 그 '진짜 어른'은 정확히 어디에 있을까.

모두가 서툰데, 모두가 능숙한 척한다

심리학에는 다원적 무지라는 개념이 있다. 다수가 속으로는 의문이나 불안을 품고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믿는 상태를 가리킨다. 강의실에서 모두가 이해하지 못했는데 아무도 손을 들지 않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모두가 같은 질문을 품고도, 침착해 보이는 옆 사람의 얼굴만 보고 '나만 모르나 보다' 하며 입을 닫는다.

어른의 세계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진다. 회식 자리의 농담 뒤에서, 학부모 모임의 웃음 뒤에서, 능숙한 표정으로 올라오는 소셜 미디어 사진 뒤에서 서로가 서로의 '괜찮은 얼굴'만 본다. 

서툰 속마음은 각자의 안쪽에 숨겨 두고 바깥에는 능숙한 얼굴만 내놓으니, 그 얼굴들을 보고 자란 확신이 하나 생긴다. 다들 잘 해내는데 나만 서툴다는 확신.

서툶이 유독 내게만 있어서 괴로운 것이 아니다. 서로의 서툶이 보이지 않아서 외로운 것이다.

서툰 어른은 덜 자란 어른이 아니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 볼 수 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서툴지 않게 되는 일일까.

삶은 졸업 시험처럼 끝나지 않는다. 한 가지를 익히면 다른 과제가 도착한다. 처음 맡는 직책, 처음 겪는 이별, 처음 늙어 가는 부모, 처음 해 보는 이사와 처음 쓰는 계약서. 어른의 삶에서는 '처음'이 줄어들지 않고 종류만 바뀐다. 그래서 서툰 것은 덜 자랐다는 증거가 아니라, 삶이 아직 새로운 문제를 계속 내밀고 있다는 증거에 가깝다.

어른은 서툴지 않은 사람이 아니다. 서툰 자신을 데리고 계속 가는 사람이다.

이 차이는 서툰 순간에 자신에게 건네는 말에서 갈린다. 심리학자 크리스틴 네프는 자기연민을 세 갈래로 설명했다. 

실수한 자신에게 비난 대신 친절을 건네는 것, 이 어려움을 나만의 결함이 아니라 사람이 공통으로 겪는 일로 보는 것, 괴로움을 과장하지도 외면하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이다. 

자기연민이 높을수록 불안과 우울이 낮은 경향이 보고되어 왔다. 자신을 몰아세우면 더 빨리 능숙해질 것 같지만, 그 방식이 반드시 성장을 앞당겨 주지는 않는다.

서툰 채로 괜찮은 어른이 되는 법

서툶을 없애는 방법은 없어도, 서툰 채로 덜 외롭게 지내는 방법은 있다.

가장 작은 시도는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해 보는 일이다. "그 부분은 처음이라 확인해 보고 말씀드릴게요." 한 문장이면 된다. 

한 사람이 이 말을 꺼내면 다원적 무지에 작은 금이 간다. 곁에 있던 사람이 같은 질문을 품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능숙해 보이려는 노력을 한 칸 줄이면 그만큼의 에너지가 돌아온다.

두 번째는 서툰 순간에, 가장 친한 친구가 같은 일을 겪었다면 뭐라고 말해 줄지 떠올려 보는 것이다. 대부분은 "처음이라 그래"라고 말할 것이다. 그 문장을 자신에게도 건네는 연습이 자기친절의 시작이다.

세 번째는 서툴렀지만 해낸 일을 기억해 두는 것이다. 완벽했던 순간이 아니라, 손이 떨렸지만 끝까지 해낸 순간을 한 줄씩 적어 둔다. 서툰 채로 지나온 길이 쌓이면 서툶은 결함이 아니라 이력이 된다.

다만 서툶이 아니라 무기력과 자책이 몇 주 넘게 이어지고 일상이 흔들린다면, 혼자 감당하기보다 상담 전문가와 이야기해 보는 편이 안전하다.

다음에 창구 앞에서 목소리가 작아지는 순간이 오면, 그 자리에 선 사람이 자신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떠올려도 좋다. 번호표를 든 사람들 대부분이 같은 이유로 조금씩 긴장해 있다.

서툰 채로 오늘도 접수 번호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 줄에 서 있는 모두가 어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