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도 모르게 거짓말을 하게 된다 |
분명 평소의 나는 거짓을 지극히 싫어하고 삶의 원칙으로 '솔직함'을 꼽을 만큼 정직한 가치관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어떤 특정한 사람 앞에만 서면 나도 모르게 불필요한 거짓말을 늘어놓거나 나를 화려하게 포장하기 바쁜 스스로를 발견하고는 깊은 자괴감에 빠진다.
상대가 나에게 무언가를 대단하게 추궁한 것도 아니고, 진실을 고백한다고 해서 세상이 무너지는 큰일이 벌어지는 것도 아닌데, 그 사람만 앞에 오면 입을 열 때마다 자꾸만 사실이 아닌 말들이 스스스로 튀어나와 엉뚱한 방패막이를 세우게 되는 수많은 날들.
대화를 마치고 쓸쓸히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문득 거울을 보며 "도대체 내가 왜 또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했을까"라며 자책의 화살을 마음 깊숙이 꽂아 넣고, 내 안의 위선적이고 옹졸한 모습에 넌더리가 나서 길게 한숨을 내쉬곤 한다.
사실 당신이 본성이 부정직하거나 남을 속이기 좋아해서가 결코 아니다. 그 사람 앞에만 서면 내 안의 가장 여린 진실을 고스란히 꺼내놓았다간 무슨 꼴을 당할지 모른다는 무의식적 경계심이, 영혼의 비상 보호색을 강제로 켜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타인을 진심으로 품어주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은근한 시선으로 상대의 약점을 훑고 지나가며 작은 흠집조차 놓치지 않고 날카로운 비난의 소재로 삼는 성향을 가진 이들이 분명 존재한다.
그런 사람 앞에서 솔직함이란 곧 내 가장 연약하고 아픈 살점을 기꺼이 도려내어 먹잇감으로 쥐어주는 것과 다르지 않기에, 인간의 뇌는 생존을 위해 본능적으로 거짓이라는 허술하지만 가볍고 단단한 갑옷을 입히는 것이다.
우리가 특정 사람 앞에서 자꾸만 거짓말을 하거나 나를 과장하게 되는 진짜 이유는, 그 사람의 무심한 눈빛이나 평가의 칼날이 내 안의 깊은 수치심과 거절에 대한 공포를 무의식적으로 건드리며 철저한 심리적 방어막을 발동시키기 때문이다.
과거에 타인의 평가나 비난에 깊게 베였던 기억이 뇌리에 박혀, "나를 제대로 보여주면 또다시 공격받고 상처 입을 거야"라는 방어적 두려움 속에서 가짜 성벽을 높이 쌓아 올리는 셈이다.
이제는 그토록 솔직하지 못했던 자신을 향한 날카로운 자책과 비난을 조용히 거두어들여야 할 때다.
오히려 왜 하필 그 사람 앞에서만 내 마음의 문이 이토록 꽁꽁 얼어붙었는지, 그 영혼의 경계선이 왜 작동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근원을 다독이며 들여다보아야 한다.
나를 방어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가면을 쥐여주어야 했던 내면의 지친 자아를 가만히 토닥여주라.
타인의 평가나 날카로운 시선 따위에 내 진짜 가치를 헐값에 넘겨주지 않아도 될 만큼 마음의 울타리가 단단해질 때, 비로소 우리는 그 어떤 누군가 앞에서라도 가면을 벗어던지고 온전한 나 자신으로 숨을 쉴 수 있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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