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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착한 사람일수록 한 번에 터질까? |
한 직장인을 가정해 보자. 그는 일 년 가까이 한 번도 싫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부탁을 받으면 웃으며 받았고, 불편한 일이 생기면 괜찮다고 넘겼다. 그런데 어느 평범한 금요일 오후, 동료의 아주 가벼운 부탁 한마디에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가장 놀란 사람은 상대가 아니라 그 자신이었다.
이 장면이 낯설지 않다면, 지금부터의 이야기는 당신의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다.
폭발은 정말 '참다가 쌓여서' 터지는 걸까?
흔히 압력솥에 빗대어 설명한다. 감정이 조금씩 차오르다가 한계를 넘으면 터진다는 것이다. 그럴듯하지만 절반만 맞다. 문제는 쌓인 양이 아니라, 쌓이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제임스 그로스는 감정을 다루는 전략을 크게 두 갈래로 나눠 연구해 왔다. 상황을 다르게 해석해서 감정 자체를 누그러뜨리는 '재평가', 그리고 겉으로 드러나는 표현을 눌러 두는 '억제'다. 억제는 당장은 효과가 있어 보인다. 표정도 말투도 잔잔하다.
그러나 연구들에서는 표현을 눌러 둔다고 해서 몸속의 긴장 반응까지 함께 가라앉지는 않는 경향이 보고되어 왔다. 겉은 평온한데 속은 계속 가동 중인 상태, 폭발하는 사람들의 내면은 대체로 이렇다.
그렇다면 차라리 시원하게 쏟아내는 편이 낫지 않을까. 화를 쏟아내면 풀린다는 오래된 믿음, 이른바 카타르시스 가설은 이후의 실험들에서 잘 지지되지 않았다. 쏟아낸 뒤에도 공격성이 줄지 않거나 오히려 커졌다는 결과가 보고되었다. 참는 것도 답이 아니고 터뜨리는 것도 답이 아니라면, 남는 길은 무엇일까.
그 길을 찾기 전에 먼저 확인할 것이 있다. 왜 이들은 애초에 말 한마디가 그렇게 어려울까.
그런데 왜 이들은 말 한마디가 그렇게 어려울까?
싫은 소리를 못 하다가 터지는 사람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성격이 약해서가 아니라 몇 가지 생각의 습관을 공유하고 있다.
공통점 1. 불편함을 말하는 일을 '관계를 깨는 일'로 번역한다
"그건 좀 불편하다"는 말을 머릿속에서는 "당신과의 관계를 위협하겠다"로 바꿔 읽는다. 갈등은 곧 파국이라는 공식이 깔려 있으니, 말하지 않는 쪽이 늘 안전해 보인다. 사실 불편함을 한 번도 말하지 않은 관계가 가장 취약한 관계일 때가 많은데도.
공통점 2. 자기 감정을 말하기도 전에 먼저 재판한다
서운함이 올라오는 순간 곧바로 반론이 따라붙는다. 이 정도로 말하면 예민한 사람 같지 않을까, 상대도 일부러 그런 건 아닐 텐데. 이렇게 스스로 변호인과 검사 역할을 동시에 맡다 보면, 감정은 말이 되기도 전에 기각된다. 기각된 감정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보관될 뿐이다.
공통점 3. '좋은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정체성이 되어 있다
거절하지 않는 나, 늘 받아 주는 나를 오래 연기하다 보면 그 모습이 곧 나 자신이 된다. 싫다고 말하는 순간 그 정체성이 깨질 것처럼 느낀다. 그래서 폭발 이후의 고통도 유난히 크다. 상대에게 소리를 질렀다는 사실보다, 내가 지켜 온 이미지가 무너졌다는 사실이 더 아프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세 가지만으로는 폭발의 크기가 설명되지 않는다. 같은 일을 참아도 어떤 사람은 조용히 지나가고 어떤 사람은 터진다. 그 차이는 어디서 나올까.
말하는 방법이 '참기'와 '터뜨리기' 두 개뿐이라면?
의사소통을 연구하는 분야에서는 사람이 자기 욕구를 표현하는 방식을 흔히 세 가지로 구분한다. 내 욕구를 접어 두는 수동적 방식, 상대를 눌러서 관철하는 공격적 방식, 그리고 내 욕구와 상대의 입장을 함께 존중하며 말하는 주장적 방식이다.
터지는 사람들에게 없는 것은 감정이 아니라 세 번째 방식의 경험이다.
공통점 4. 중간 크기의 말을 가져 본 적이 없다
"조금 불편하다", "그건 어렵겠다" 같은 작은 문장이 어휘에 없다. 그래서 불편함은 임계점에 닿아야만 말이 된다. 그리고 그때의 말은 이미 가장 큰 사이즈다. 작았을 때 말하면 대화로 끝났을 일이, 커진 뒤에 말하면 사건이 된다.
공통점 5. '더 좋은 때'를 계속 기다린다
오늘은 상대가 바빠 보이니까, 내일은 기분이 좋아 보이니까, 이번 프로젝트만 끝나면. 타이밍을 계산하는 사이 말해야 할 일은 점점 부풀어 오른다. 문제는 완벽한 때가 한 번도 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계산이 길어질수록 처음의 작은 불편함은 '쌓인 장부'로 둔갑한다.
여기서 하나의 재해석이 가능하다. 참는 사람과 터뜨리는 사람은 두 사람이 아니다. 같은 사람의 앞면과 뒷면이다. 우리가 폭발이라 부르던 것은 사실, 마지막에 남은 단 하나의 말하기 방식이었다. 그래서 폭발은 성격의 폭주가 아니라 선택지가 두 개뿐인 사람의 필연적인 결말에 가깝다.
그렇다면 선택지를 늘리는 일은 어디서 시작해야 할까.
그럼 어디서부터 바꿔야 할까?
처음부터 큰 사안으로 시도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작은 말의 횟수를 늘리는 것이다.
첫째, 폭발했을 때 내뱉을 크기의 10분의 1로 말해 보라.
터졌을 때의 문장이 "너는 맨날 왜 이래"라면, 초기 크기는 "그건 조금 불편하다"다. 같은 감정을 가장 작은 단위로 먼저 꺼내 놓는 연습이다.
둘째, 문장에 틀을 입혀라.
“~했을 때 나는 ~하게 느꼈다. 앞으로는 ~해 주면 좋겠다.” 사실과 감정과 부탁, 이 세 가지만 있어도 상대를 공격하지 않으면서 내 요청을 전달할 수 있다. 비난은 상대를 방어적으로 만들지만 요청은 협의를 만든다.
셋째, 가장 안전한 관계에서 먼저 연습하라.
처음부터 직장 상사나 가족을 상대로 시험할 필요는 없다. 반응이 가장 예측 가능한 사람 앞에서, 가장 가벼운 사안으로 시작해 몸이 말하기에 익숙해지도록 하면 된다.
넷째, 이미 터졌다면 사과로 끝내지 마라.
소리를 지른 것에 대한 사과는 필요하다. 하지만 사과로 대화를 덮으면 원래 하려던 말은 여전히 전달되지 못한 채 남는다. 가라앉은 뒤에 "아까 그 방식은 미안하다. 다만 내가 말하고 싶었던 건 이거였다"까지 이어져야 다음 폭발이 줄어든다.
한 가지는 구분해 둘 필요가 있다. 상대가 위협적이거나 폭언, 괴롭힘이 이어지는 관계라면 이 방법의 대상이 아니다. 그때의 침묵은 소통의 실패가 아니라 안전의 문제이므로, 맞서기보다 거리 확보와 주변 또는 전문 창구의 도움을 먼저 찾는 편이 맞다.
또한 폭발이 잦아서 일상이나 관계에 지장이 생긴다면, 혼자 해결하려 하기보다 상담 전문가와 이야기해 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폭발한 뒤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처음의 장면으로 돌아가 보자. 금요일 오후 목소리를 높인 그 직장인에게 남은 것은 통쾌함이 아니라 민망함과 자책이었다. 터뜨린 말이 틀려서가 아니다. 말해야 했던 시점이 한참 지난 뒤에야 말해졌기 때문이다.
싫은 소리를 못 한다는 것은 착하다는 증거가 아니라, 말하는 방법이 부족하다는 신호일 수 있다. 그리고 방법은 배울 수 있다. 오늘 하루 안에 아주 작은 불편함 하나를 가장 작은 크기로 말해 보면 어떨까. 당신이 마지막으로 "그건 조금 불편하다"고 말한 것은 언제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