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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직장 더 다녀야 할까 |
일요일 밤 열한 시가 넘으면 휴대폰 메모장에 '퇴사'라고 썼다가 지우는 사람이 있다. 두 글자를 쓰는 데는 일 초도 걸리지 않는데, 지우는 데는 십 분이 걸린다. 명치 어딘가가 묵직한 채로, 내일이 월요일이라는 사실을 머리보다 몸이 먼저 알아채는 밤. 이 글은 그 밤을 보내 본 사람을 위한 것이다.
퇴사를 고민할 때 사람들은 대개 질문을 이렇게 세운다. 계속 다닐 것인가, 나갈 것인가.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하니 당연해 보이지만, 여기에 함정이 있다. 선택지를 둘로 줄이는 순간 나머지 가능성이 전부 시야에서 사라진다. 고민을 정리할 때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하는 것은 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한 직장인을 가정해 보자. 금요일 연봉 면담에서 동결을 통보받고, 같은 날 동기의 승진 소식을 듣는다. 그는 "알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웃으며 방을 나온다. 그 웃음이 어디서 나왔는지는 본인도 모른다. 그리고 일요일 밤, 메모장을 연다. 이런 장면에서 사람은 대부분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 다 싫다고.
바로 이 '다 싫다'가 첫 번째 점검 대상이다. 현타가 오면 일, 사람, 회사, 그리고 요즘의 나까지 한꺼번에 싫어진다. 덩어리로 느끼면 답도 하나뿐인 것 같다. 나가거나 참거나. 그런데 쪼개 놓으면 사정이 달라진다. 일이 싫다면 직무를 바꾸는 길이 있고, 사람이 싫다면 팀을 옮기는 길이 있고, 회사의 구조가 싫다면 그때 비로소 이직이 답에 가까워진다.
네 번째 칸, 요즘의 내가 지쳐서 전부 싫은 것이라면 앞의 셋 모두 답이 아닐 수 있다. 네 칸에 열 점 만점으로 점수를 매겨 보면, 의외로 낮게 나오는 칸이 하나쯤은 있다. 그 칸이 지켜야 할 것이고, 높게 나온 칸이 풀어야 할 것이다.
두 번째 기준은 시간축이다. 이 기분이 올해 처음인가. 사건 때문에 온 현타는 시간이 지나며 가라앉는 경우가 많고, 누적 때문에 온 현타는 가라앉았다가 다시 돌아온다. 달력과 사진첩, 오래된 메모를 일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면 같은 일요일 밤이 몇 번이나 있었는지 드러난다.
그렇다면 금요일의 면담은 원인이 아니라 방아쇠였을 가능성이 크다. 세계보건기구는 번아웃을 직업과 관련된 현상으로 설명하면서 탈진, 일에 대한 심리적 거리감과 냉소, 업무 효능감의 저하를 특징으로 꼽는다.
이 세 가지가 몇 주 넘게 이어진다면 퇴사 이전에 쉬어야 한다는 신호일 수 있다. 잠이 얕아지고 밥맛이 사라지는 것까지 겹친다면 직장 문제를 넘어 건강 문제일 수 있으니, 결정에 앞서 전문가의 도움을 먼저 받는 편이 안전하다.
세 번째 기준은 불편한 질문이다. 바꿔 본 것이 있는가. 업무 조정을 요청해 보았는가, 팀 이동을 알아보았는가, 팀장과 솔직하게 마주 앉아 본 적이 있는가. 퇴사를 고민하는 사람 대부분이 혼자 삼키고, 혼자 계산하고, 혼자 결론을 내린다.
바꿔 보지 않고 나가면 다음 직장에서 같은 일요일을 만날 확률이 높다. 시도에는 또 하나의 쓸모가 있다. 말을 꺼냈을 때 조직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조직이 사람의 말을 듣는 곳인지는 나가기 전에 확인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정보다.
단, 여기에는 예외가 있다. 폭언이나 괴롭힘, 임금 문제는 고민할 일이 아니라 대응할 일이다. 이런 경우라면 퇴사 여부와 별개로 노무사나 고용노동부 같은 공적 창구부터 찾는 것이 순서다.
네 번째는 방향이다. 심리학에서는 동기를 접근과 회피로 나눈다. 무언가를 얻으려는 힘과, 무언가에서 벗어나려는 힘이다. 퇴사에도 같은 구분이 적용된다. "여기서 벗어나고 싶다"만 있고 "저기로 가고 싶다"가 없다면, 그 퇴사는 이직이라기보다 도피에 가깝다.
도피가 틀렸다는 뜻은 아니다. 쉬기 위해 나가는 것도 충분한 이유가 된다. 다만 그렇다면 얼마나 쉴 것인지, 그 시간을 버틸 돈이 있는지를 숫자로 알아야 한다. 통장 잔액이 아니라 '몇 개월'로 계산해 보라. 한 달 생활비로 나누는 순간 막연한 불안이 숫자가 된다.
흔히 석 달에서 여섯 달치 생활비를 기준으로 이야기하지만, 사정은 사람마다 다르다. 중요한 것은 모른 채 나가지 않는 일이다. 숫자를 모르면 불안이 결정을 대신한다.
그 아래에 깔린 변수가 하나 더 있다. 여기서 쌓은 시간이 아까워서 못 나가겠다는 마음이다. 이미 쓴 시간과 노력은 어느 쪽을 택해도 돌아오지 않는다. 경제학과 심리학이 매몰비용이라고 부르는 함정이 바로 이것이다. 판단의 기준은 지금까지 얼마를 썼는가가 아니라, 앞으로 일 년을 여기서 보내고 싶은가여야 한다.
다섯 번째 기준이 가장 의외일 것이다. 나갈 수 있는 상태를 먼저 만들어 보라는 것이다. 오래 열어 보지 않은 이력서를 열어 한 줄씩 고치고, 한두 곳에 지원서를 내고, 면접을 한 번 보라. 합격이 목적이 아니다.
밖에서 내 일을 설명해 보면, 회사 안에서는 당연했던 일이 경력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는 걸 알게 된다. 나갈 수 없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남는다'는 선택이 아니라 갇힘이다. 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되어 놓고 남는 것은 선택이다. 같은 자리에 앉아 있어도 두 사람은 전혀 다른 사람이다.
마지막 기준은 타이밍이다. 감정이 가장 높은 순간에는 결정하지 않는다. 연봉 면담 직후, 회의에서 깨진 날의 결론은 대개 감정의 크기만큼 과장되어 있다. 일주일쯤 두고 같은 기준으로 다시 점검했을 때도 같은 답이 나온다면, 그때가 진짜 결정이다.
다시 일요일 밤의 메모장으로 돌아가 보자. '퇴사' 두 글자만 쓰고 지우는 사람과, 그 옆에 숫자를 적는 사람은 같은 밤을 보내지 않는다. 버틸 수 있는 개월 수, 고쳐 놓은 이력서, 잡아 둔 면접 일정 같은 숫자 말이다.
이 직장을 더 다녀야 할지 나와야 할지는 그 숫자들이 생긴 다음에 정해도 늦지 않다. 지금 당신의 메모장에는 쓰고 지우기만 반복한 단어가 있는가. 있다면 오늘은 그 옆에 숫자 하나를 적어 보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