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모습을 잃어버렸을 때 |
거울을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든 적 있나요. "나 원래 이런 사람이었나."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예전만큼 선명하지 않고, 누가 뭘 물으면 내 생각보다 먼저 "저 사람은 뭘 원할까"를 계산하고 있는 나. 언제부터 이렇게 됐는지, 정확히 짚어내기도 어렵습니다.
이런 이야기, 낯설지 않을 겁니다. 회식 자리에서 메뉴를 고를 때조차 "다들 뭐 드실래요"부터 묻고, 정작 본인이 뭘 먹고 싶은지는 마지막에야 떠올리는 사람. 처음엔 그저 배려라고 생각했는데, 문득 돌아보니 자기 의견을 가장 나중에, 가장 작게 말하는 습관이 되어버린 경우 말입니다.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습니다. 눈치를 보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타인의 반응을 읽는 능력은 관계를 부드럽게 만드는 좋은 자원입니다. 진짜 문제는, 그 능력이 어느 순간 '내 생각을 아예 지우는 방식'으로 바뀌었을 때 시작됩니다. 처음엔 "이 말은 조금 참자"였던 게, 나중엔 "이 말은 아예 없었던 걸로 하자"가 되어버리는 거죠.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되돌려야 할까요. 다섯 단계로 나눠 짚어보겠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지금 이 순간 눈치를 보고 있다는 걸 알아채는 것입니다. 알아채지 못하면 되돌릴 수도 없습니다. 대화 중에 "지금 나는 내 생각을 말하고 있나, 상대가 원할 것 같은 말을 하고 있나"를 잠깐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두 번째 단계는, 아주 작은 것부터 내 의견을 먼저 말해보는 것입니다. 큰 결정 말고, 오늘 점심 메뉴처럼 위험 부담이 거의 없는 것부터. "저는 이게 좋아요"라는 말을 부담 없는 상황에서 자꾸 연습해두면, 정작 중요한 순간에도 그 말이 조금 더 쉽게 나옵니다.
세 번째 단계는, 상대의 반응이 즉시 나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몸으로 익히는 것입니다. 내 의견을 말했는데 상대가 살짝 뜨악한 표정을 짓거나 침묵이 흘러도, 그게 곧 관계가 깨졌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 어색함을 몇 번 버텨내고 나면, 다음번엔 훨씬 덜 두려워집니다.
네 번째 단계는, "내가 원래 어떤 사람이었는지" 과거의 기록을 되짚어보는 것입니다. 예전에 좋아했던 것, 몰입했던 것, 남 눈치 안 보고 신나서 떠들었던 순간들. 그 기억들이 지금의 나에게 힌트를 줍니다. 잃어버린 게 아니라, 잠시 뒤로 밀어둔 것일 뿐이니까요.
다섯 번째 단계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사람 앞에서 연습하는 것입니다. 모든 관계에서 동시에 나를 되찾을 필요는 없습니다. 딱 한 사람, 내가 무슨 말을 해도 편안한 사람 앞에서부터 조금씩 내 의견을, 내 취향을, 내 감정을 꺼내보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눈치를 완전히 안 보는 사람이 되는 게 목표는 아닙니다. 그건 오히려 더 피곤한 일일 수 있습니다. 목표는, 눈치와 내 목소리 사이에서 지금처럼 완전히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 것. 오늘 하루, 아주 작은 것 하나만 내 의견대로 골라보세요. 그 작은 선택 하나가, 잃어버렸던 나를 다시 찾아오는 첫걸음이 될 겁니다.